나는 어릴때부터 사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생 시절부터 사람들이 어떤 논쟁을 하고 있으면 나는 그 논쟁의 중심에 끼어들거나 회피하기 보다는 각자의 생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각자의 논리에 대한 모순 또는 서로 반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키고자하는 어떠한 가치, 같은 이야기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 대해서 어떻게든 풀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모기에 물린 발을 긁다가 생각났다.
아마 이것도 학생시절이였던 것 같은데, 인간은 신체적으로 생각보다 진화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해당 내용을 간단하게 찾아보면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에서 다루는 주제로 "진화적 부정합"이라는 개념을 말한다.
인간의 변화를 진화속도가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들이 많은데, 예를 들면 비만, 당뇨, 근시, 사랑니 등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에 집중을 했다.
바로 "정신" 그리고 "사고"이다.
인간의 변화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사회 시스템이고 그에 따라 육체 못지않게 정신의 소모 방식이 변경되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생존 욕구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과거에는 본인이 살기 위해 사냥이 필요했고 또 위험한 생물에 대해서는 피하도록 사고를 했을 것이다.
그 후에는 사회가 형성되어 살기 위해 서로의 관계가 중요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관계라는 말은 굉장히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을 바라고 주는 행위로서의 관계가 있을 수 있고, 무작정 주거나 또는 무작정 받는 관계부터 다양하다.
물론 과거에 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그 본질은 크게 같을지 몰라도 세부적으로 바라봤을 때에는 또 그 본질이 매우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현대 사회가 오면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이에 따른 정신적으로도 "진화적 부정합"의 상태가 발생하여 정신병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제 아침만해도 어떤 갑질로 인한 뉴스거리가 나왔다.
누군가는 갑질에 대한 욕설로 댓글을 도배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조롱하거나 흔히 말하는 관심을 끌기 위해 공격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뉴스를 공유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반응들은 관찰하기도 한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
요즘 사람들이 입에 달고다니는 말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사의 흔적에서 알 수 있는데, 바로 자기들보다 어린 세대를 욕하는 것이다.
이를 세대가 나아가면서 변화되는 젊은 세대에 대한 경계로 보는 자들도 있고, 역으로 흔히 전세대의 개입을 꼰대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거부감에 의해 나타날 수도 혹은 둘 다이거나 더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위의 이유도 있겠지만 빠르게 가속하는 인간 세상이 그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심리학과 관련하여 아이 자아, 부모 자아, 어른 자아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 자아들이 충분히 성숙하게 생성되지 않는게 영향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특히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만은 한정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초과열된 경쟁시대에서 부모는 아이의 자아와는 관심없이 성공하기 위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적성을 아이에게 투영하게 된다.
그 과정중에 비교적 건강하지 못한 아이 자아와 부모 자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사고를 시작하면서 어른의 자아가 형성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보다 더 과열된 사회속에서 일반적인 자아의 정체성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른 자아의 경우는 성장에 따라서 바뀌거나 삶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건강하지 못한 어른 자아가 비대해져 높은 나이대에서도 흔히 어린세대를 욕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모습이 본인의 세대 혹은 그 윗세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가능성을 던져본다.
육체는 정신과 비교했을 때 증명하기가 다소 쉽다.
과거의 화석이나 자료들을 남겨 바라보면 서로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은 그들 각각의 세계를 남겨둔다고 치더라도 그 세계를 이해하는데에 수많은 시간이 지날 것이고 또 남기는 것조차 어려우며 심지어 온전히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지금도 수 많은 약품들과 치료방법이 넘치는 와중에 정신에는 너무 소홀해져 어떻게 보면 정신에서 "진화적 부정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육체 만큼이나 정신은 중요하다.
육체의 죽음만큼 정신의 죽음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육체보다는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을 더 고립시키고 비난 하는 경향이 크다고 본다.
그들도 다만 이들도 다른 사람들이 몸이 아파 병원을 가듯 정신이 상처받고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아플 뿐이다.
치료 할 수 있고,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나도 하루하루 내 상각을 정리하면서 남들을 보고 그제서야 조금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글들을 통해서 전문가를 통해서 심리를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도 이따금씩 들어온다.
이건 내 하나의 충동일수도 있고, 혹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본능일수도 있다.
나는 아직 나를 분석하고 관찰하는 단계에 있다.
이 과정중에 미칠수도 아니면 한단계 나아가 성숙해질 수도 어떤 결과를 낼지는 알 수 없다.
본인의 정신세계에 미쳐 정신병에 걸려 죽은 유명한 철학자도 미술가도 그리고 그들은 분석해낸 심리학자도 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